사사롭고 소소한 이야기/이런저런 이야기 10

그렇게 피아노 연습은 시작되었다.

피아노를 독학으로 배우기 시작한 것은 올해 3월 초 무렵이다. 나이 들어 난생처음 피아노를 배우기로 결심하게 된 까닭은, 무엇보다 피아노라는 악기가 생각보다 배우기가 매우 어렵고 실력이 더디게 늘어 중도에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말은 결국 피아노를 잘 치려면 죽을 때까지 연습해야한다는 말과 다름 없었기에 이른바 ‘평생 악기’를 찾고 있던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서점에서 성인을 위한 바이엘 상∙하권(Amazing 바이엘 상∙하, 조혜란, 도약에듀)을 구입하고, 악기상가에서 입문자용 전자피아노(야마하 P-225)도 구입하고 나니, 얼추 피아노를 배우기 위한 준비는 갖추게 되었고, 그렇게 피아노 연습은 시작되었다. 처음 맞이한 ..

오감(五感)으로 하는 수영, 오감(五感)으로 사는 삶

수영 실력을 개선하는데 있어 가장 큰 애로사항 중 하나는 아마도 수영을 하는 나의 모습을 직접 보면서 수영을 할 수는 없다는데 있을 것이다. 스트림라인은 잘 유지되고 있는지, 풀 동작에서 팔꿈치가 지나치게 뒤로 빠지지 않는지, 다리가 심하게 가라앉지 않는지, 측면 호흡시 머리를 지나치게 들지 않는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며 수영을 할 수는 없다. 정기적으로 내가 수영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기록하고 분석하여 잘못된 점을 개선해나가면 좋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수영장에서 카메라 촬영은 일반적으로 금지되어 있고, 더욱이 사람들에게 불쾌감이나 불편함을 줄 수 있는 행동이므로 그렇게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오로지 나의 오감을 통해 전달되는 크고 작은 감각의 조각들을 모아 그것을 토대로 내가 ..

스트레스는 수용성(水溶性)

"스트레스는 수용성(水溶性), 즉 물에 녹는 성질이 있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독일 태생의 이름 모를 생물학자에 의한 것이다"라는 것은 내가 지어낸 순 거짓말이지만, 수영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수영장 물에 몸을 담글 때마다 스트레스가 사르르 풀리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같은 이유로 오늘도 수영장 물에 몸을 담그고 행복하게 물살을 헤쳐나간다.   이렇게 좋아하는 마음으로 수영을 계속하다보면, 어느 순간 수영을 좀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수영을 잘한다는게 생각만큼 쉽지만은 않다. 수영강사가 돈을 버는 이유다. 물속에 들어가기 전에는 “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싶은 동작이 일단 물속에 들어가면 쉽사리..

하루키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Haruki Murakami)

※ 제목은 하루키의 에세이 를 모방한 것입니다.  1. 들어가며 아아, 기즈키,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너와 달리, 살려고 결심했고, 그것도 내 나름대로 올바르게 살겠다고 마음먹었었어. 너도 틀림없이 괴로웠겠지만 나 역시 괴롭다, 정말이야. 이렇게 된 것도 네가 나오코를 남겨 놓고 죽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그녀를 절대로 버리지는 않을 생각이야. 나는 그녀가 좋고 그녀보다는 내 쪽이 강하기 때문이야. 그리고 난 지금보다 더 강해질 거야. 그리고 성숙해질 거야. 어른이 되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지. 난 지금까지는 그럴 수만 있다면 열일곱, 열어덟인 채로 있고 싶었어.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나는 십대 소년이 아니니까. 난 책임을 느낀다. 아아, 기즈키, 난 너와 함께 ..

벨첼(Welzel), 평소처럼 합격자와 불합격자 모두를 격려하다!

안녕하세요.김동현 변호사입니다. 제54회 사법시험 최종합격자 발표가 오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사법시험을 합격한 것이 너무나도 먼 옛날의 일처럼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사법시험 뿐만 아니라 그외의 다른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이라면 모두 그 합격의 영광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꽃다운 청춘을 독서실 책상에서 보내야만하는 인고의 과정을 거쳐야하는데요. 이러한 고단한 과정을 거친 후 어떤 이는 합격을 하고, 또 어떤 이는 불합격의 고배를 마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 몇몇 수험생을 제외하고는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수험생은 없을 것입니다. 자신의 꽃다운 청춘을 바쳐 공부하는데, 이를 허투루 할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든 수험생들의 '목적'은 매 한 가지일 것입니다. 바로 '합격'이라는 ..

민법의 1118개 조문에 깃든 광기(狂氣)에 관하여

안녕하세요김동현 변호사입니다. 여러분 혹시 우리나라 민법 조문이 총 몇개인지 아시고 계십니까? 우리 민법의 조문 개수는 무려 1118개나 되는데요. 오늘은 이렇게 조문의 개수가 1118개나 되는 민법을 최초로 고안한 서양인들의 '광기(狂氣)'에 대하여 이야기 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법학공부를 시작하면서 처음 민법을 접했을 때 상당히 놀랐는데요. 그것은  일부 강행규정을 빼놓고는 대부분 임의규정에 불과함에도 그 규정이 무려 1118개로 이루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엄청난 수의 조문들을 보면서 현대 민법을 최초로 고안해낸 서양인들에게서 일종의 광기(狂氣)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자신들은 세상의 모든 일을 이러한 법 조문으로 모두 규율할 수 있고, 그리고 규율해내고 말겠다는 그러한 무모한(..

"사실 난 니 엄마가 아니다"라는 막장스토리는 아침드라마의 것만은 아니었다

안녕하세요.김동현 변호사입니다. 오늘은 우리의 법의 '출생의 비밀(?!)'에 얽힌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들 혹시 아침드라마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우리나라 아침드라마의 전형적인 레퍼토리 중의 하나가 바로 "사실 난 니 엄마가 아니란다"라는 식의 막장스토리인데요. 그런데 이런 상황이 꼭 아침드라마에만 국한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 법도 그 시스템 자체가 우리의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으로 법의 체계는 크게 두가지로 나뉘는데요. 그것은 바로 영미법계와 대륙법계입니다. 영미법계는 원칙적으로 불문법, 즉 글로 쓰여진 법전이 없으며, 구체적인 법률문제에 관하여 법원이 내린 판례를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이와 같은 판례의 구속력을 인정하는 형태로 시스템이 운용됩니다. 반면에 대륙법계는 체..

왜곡된 영웅주의와 법치주의 -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벌>에 관한 단상

안녕하세요.김동현 변호사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이라는 작품을 모르는 사람을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러시아의 유명한 소설가로서 같은 러시아 출신 작가인 톨스토이와 함께 러시아 문학의 양대산맥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러시아소설을 톨스토이의 를 통하여 먼저 접해보게 되었습니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점심시간을 아껴 조금씩 조금씩 읽어서 인지 조금은 지루했다는 것이 솔직한 저의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 접하게 된 도스토예프스키는 기대 이상이었고, 도스토예프스키가 소설가로서의 재능은  톨스토이보다 100배는 낫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도스토예프스키는 돈을 벌기 위해 소설을 썼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도스토예프스키는 도박에 중독된 것으로..

법이 문학과 예술을 만났을 때

안녕하세요김동현 변호사입니다. 예전 어떤 판사님의 글에서 ‘판사들이 자신의 판결이 논리적이라는데에만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며 걱정하시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저도 처음 그 글을 보았을 때는 그게 무슨 문제인가 라고 생각했었으나 곰곰이 생각하면 할수록 그 말씀에 크게 공감하고 있습니다. 사실 학교 울타리 안에서는 합리성, 논리성이 강조되어 왔고 저 또한 그러한 것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노력해 왔습니다. 하지만 요즈음에 와서 논리라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는 기반이 너무나도 불안정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논리란 쉽게 말하자면 '전제'로 '결론'을 뒷받침하는 과정(이를 '논증'이라고 합니다)에 쓰이는 원칙 같은 것인데, 사실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거슬러 올라가보면 결국 최초의 전제의..

소크라테스는 죽는가에 관한 법학적(?!) 고찰

안녕하세요김동현 변호사입니다. 여러분, '법' 또는 '법학'이란 것에 접근하기가 쉽지만은 않으시죠?  하지만 '법'이란 것이 그렇게 마냥 어려운 것만은 아닙니다. 사실 우리는 '법의 논리구조'를 이미 학창시절때 배워 잘 알고 있기까지 한데요.  즉 우리가 중․고등학교 때 배우는 것 중에 ‘삼단논법’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예로 제시되는 것이 다음과 같은 유명한 것이죠. 모든 사람은 죽는다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그런데 이처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삼단논법이 바로 ‘법이 적용되는 과정 혹은 논리구조’인 것입니다.  가령 우리나라 법 중에 “모든 사람은 죽는다”라는 법이 있고, 어느날 소크라테스가 법률사무소 연우의 김동현 변호사를 찾아와 “김동현 변호사님, 제가 진짜 죽습니까?”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