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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의 1118개 조문에 깃든 광기(狂氣)에 관하여

김동현 변호사 2012. 7. 22. 15:16

안녕하세요

김동현 변호사입니다.

 

여러분 혹시 우리나라 민법 조문이 총 몇개인지 아시고 계십니까? 우리 민법의 조문 개수는 무려 1118개나 되는데요. 오늘은 이렇게 조문의 개수가 1118개나 되는 민법을 최초로 고안한 서양인들의 '광기(狂氣)'에 대하여 이야기 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법학공부를 시작하면서 처음 민법을 접했을 때 상당히 놀랐는데요. 그것은  일부 강행규정을 빼놓고는 대부분 임의규정에 불과함에도 그 규정이 무려 1118개로 이루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엄청난 수의 조문들을 보면서 현대 민법을 최초로 고안해낸 서양인들에게서 일종의 광기(狂氣)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자신들은 세상의 모든 일을 이러한 법 조문으로 모두 규율할 수 있고, 그리고 규율해내고 말겠다는 그러한 무모한(?!) 광기 말입니다.

 

제가 민법을 고안했던 최초의 인간이었다면 아마도 조문이 100개 이상 넘어갈 때쯤 '이런 것은 불가능해, 어떻게 이렇게 복잡한 세상을 인간이 만들어낸 몇개의 조문으로 규율할 수 있다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고 일찌감치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서양의 완벽주의에 가까운 광기 또는 자신감은 사실 우리의 기본 정서에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즐겨 접하는 도가사상의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만 하더라도 그러한 점을 잘 보여주는 것 같이 생각됩니다.

 

이는 곧 '도(道)'를 '도(道)'라고 말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도(道)'가 아니라는 의미인데, 이것은 인간이 어떠한 본질을 언어로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인식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으며, 애초에 동양인들은 '완벽'이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했다고 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완벽'하지 않으면 처음부터 하지 않겠다는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 동양인들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생각들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오히려 '여백의 미'라는 것이 중시되기도 하고, '융통성'이 사회생활에서 높이 평가되는 가치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서양인들은 비록 하자가 있기는 하지만 끝까지 뭔가를 밝혀보려고 도전하고 노력해 왔던 것 같습니다. 부딪쳐 깨진다고 하더라도 도전하는 그런 정신 말입니다. 그들의 학문에서는 항상 무엇인가를 정확히 '정의(definition)'하려는 끊임없는 열정이 엿보이고, 그러한 개념정의를 기초로하여 그 위에 그 학문만의 나름의 체계를 쌓아 올려왔던 것입니다.

 

그런 반면에 동양의 학문에서는 정확한 개념정의보다는 그 때 그 때 그러한 개념을 어렴풋이 파악할 수 있는 선인들의 말씀이 있을 뿐입니다. 예를 들면 '효(孝)'라는 것이나 '도(道)'라는 것을 정확히 정의하려고 하지는 않고, 다만 이러한 것을 감지해낼 수 있는 일화나 선인들의 말씀이 있을 뿐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서양인들의 광기는 '법'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닌데요. 바로 과학을 비롯한 현대 학문도 마찬가지 입니다. 과학도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세계의 모든 비밀을 풀어보겠다는 무모하고도 확신에 찬 자신감으로 우리 자연세계의 비밀을 밝혀나가고 있으며 많은 부분에서 놀랄만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광기(?!)가 어떤 면에서는 무모하다는 것, 즉  동양인들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세상 모든 점을 다 규율하거나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은 어느정도 확실해보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모든 것을 규율하거나 밝힐 수 없지만, 서양인들이 고안해낸 이러한 하자있는(!?) '법'과 '과학'이 매우 유용하고, 파워풀하다는 것은  그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양인들의 이러한  광기의 산물인 '법'과 같은 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도, 이러한 것들이 궁극적으로 완벽할 수 없다는 점도 염두에 두면서 이를 계속적으로 개선해나간다면,  우리의 법의 시스템 혹은 그 구조가  비록 서양의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운용에 있어서는 보다 우리의 몸에 맞는 우리의 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