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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영웅주의와 법치주의 -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벌>에 관한 단상

김동현 변호사 2012. 7. 15. 15:27

안녕하세요.

김동현 변호사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라는 작품을 모르는 사람을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러시아의 유명한 소설가로서 같은 러시아 출신 작가인 톨스토이와 함께 러시아 문학의 양대산맥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러시아소설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통하여 먼저 접해보게 되었습니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점심시간을 아껴 조금씩 조금씩 읽어서 인지 조금은 지루했다는 것이 솔직한 저의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 접하게 된 도스토예프스키는 기대 이상이었고, 도스토예프스키가 소설가로서의 재능은  톨스토이보다 100배는 낫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도스토예프스키는 돈을 벌기 위해 소설을 썼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도스토예프스키는 도박에 중독된 것으로 유명했고, 항상 돈에 쪼들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톨스토이처럼 많은 인세를 받지도 못하고 항상 적은 금액에 출판계약을 맺고는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은 톨스토이의 소설보다는 대중적인 무엇인가가 있는 듯 합니다. 아무래도 돈이 궁한 도스토예프스키로서는 자신의 소설을 많이 팔아야(?!)만 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간략히 <죄와 벌>의 줄거리를 소개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죄와 벌 - 줄거리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영웅심리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는 고리대금업자 노파를 아무도 모르게 살해하고, 수사당국은 곧장 수사에 착수합니다. 그러나 거의 완전 범죄를 범한 라스콜리니코프에 대하여 수사관은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어 라스콜리니코프를 체포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이 저지른 살인행위로 인하여 극심한 번뇌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때 우연히 가족들에게 헌신적이고 선량한 창녀 '소냐'를 만나게 되면서 자수를 결심하게 되고 결국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수하여 수사당국에 체포됩니다. 
  그 후 라스콜리니코프는 감옥에서 다시 새로운 인간으로 변해간다는 장면으로 소설은 마무리 됩니다.

 

이 소설을 어떠한 관점에서 읽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직업적 의식을 발동하여 법치주의의 관점에서 이 소설을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이러한 법치주의의 관점에서 볼때 '라스콜리니코프의 비극'은 무엇보다 법치주의가 그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법이 사람들의 의사결정에 있어서 규범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웅은 법을 어겨도 되는 것'이라는 왜곡된 영웅주의가 싹트게 된 것입니다.

 

왜곡된 영웅주의와 관련해서 '나폴레옹이 과연 영웅인가'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우리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도 고리대금업자 할머니를 살해하기 직전 많은 망설임 끝에 나폴레옹과 같은 영웅이라면 과연 이 상황에서 망설였을까라고 자문한 후 고리대금업자 할머니를 살해한 것입니다.

 

사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을 모두 읽어 본 후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나폴레옹'이라는 인물이 러시아 사람들에게 정말 강한 인상을 주었구나하는 것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은 나폴레옹이 몰락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모스크바까지 입성하여 모스크바를 불태워버린 나폴레옹은 러시아 사람들에게 잊혀질 수 없는 인물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세상 사람들이 나폴레옹을 영웅이라고 칭하는 것이 탐탁치 않았습니다. 나폴레옹은 범죄자이며 너무나도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임에도 그는 부당하게도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다는 것이 저의 소박한 생각이었고, 이러한 잘못된 칭송이 일그러진 영웅주의를 부추기고, 결국 법치주의에 대한 위협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혁명을 통해서 국민적 인기를 얻은 군인입니다. 근대시민혁명으로 유명한 프랑스혁명을 통해 인기를 얻은 자가 오히려 프랑스혁명의 취지를 거슬러 황제가 되었습니다. 베토벤이 프랑스혁명당시 나폴레옹을 너무나도 좋아하여 교향곡 <영웅>을 나폴레옹에게 헌정하려하였으나,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실망했다는 일화는 매우 유명합니다.

 

더욱이 나폴레옹은 엄청난 전범(戰犯)입니다. 그는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영달을 위해 자신의 권력을 이용했을 뿐입니다. 알프스산맥을 넘어 모스크바까지 원정을 가는 것이 프랑스 국민들에게 과연 행복을 가져다 주었을지 지금도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그에게 부여된 영웅의 칭호는 너무나 부당한 것입니다. 나폴레옹과 같은 범죄자는 영웅이라고 불리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며, 범죄자가 영웅으로 불리는 것은 법치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죄와 벌>이라는 소설을 통하여 재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서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나폴레옹을 생각하면서 '영웅들은 범죄를 저질러도 좋다'는 논리를 펼치지만 이것은 법치국가에서는 너무나도 위험한 생각이며 망상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생각이 활개 칠 수 있는 것은 나폴레옹과 같이 비난받아 마땅한 '범죄자'들이 오히려 영웅으로 부당히 칭송받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부당한 명성은 결국 어떠한 가치판단을 함에 있어서 일반인들을 큰 혼란에 빠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의 역사에서도 권력자들이 법 위에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인 적이 많고, 심지어 이러한 권력자들을 처벌하려고 할 때면 그들은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나감으로써 우리나라의 법치주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여지없이 훼손시켜왔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며, 지금도 '힘있는 자들은 법위에 있다'는 그릇된 인식이 남아 있는 것도 이러한 암울한 과거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범죄를 저지른 자는 누구나 반드시 처벌받는 모습을 볼 때 국민들은 법치주의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고, 나아가 법을 신뢰하게 될 것입니다. 법이 이러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부당한 예외를 허용할 때 법치주의는 빈 껍데기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법치주의가 훼손당했을 때 국민들은 의사결정기준을 잃고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법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적용된다는 ‘법 앞에의 평등’이 실현되었을 때 힘있는 자는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궤변은 통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이 소설의 마지막을 라스콜리니코프가 자수를 하고 그에 따른 죄값을 치르며 새로운 인간으로의 변화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것을 보면서 도스토예프스키 또한 나폴레옹으로 대표되는 왜곡된 영웅주의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는 다소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