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를 독학으로 배우기 시작한 것은 올해 3월 초 무렵이다.
나이 들어 난생처음 피아노를 배우기로 결심하게 된 까닭은, 무엇보다 피아노라는 악기가 생각보다 배우기가 매우 어렵고 실력이 더디게 늘어 중도에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말은 결국 피아노를 잘 치려면 죽을 때까지 연습해야한다는 말과 다름 없었기에 이른바 ‘평생 악기’를 찾고 있던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서점에서 성인을 위한 바이엘 상∙하권(Amazing 바이엘 상∙하, 조혜란, 도약에듀)을 구입하고, 악기상가에서 입문자용 전자피아노(야마하 P-225)도 구입하고 나니, 얼추 피아노를 배우기 위한 준비는 갖추게 되었고, 그렇게 피아노 연습은 시작되었다.
처음 맞이한 피아노 건반은 컴퓨터의 키보드와는 달리 양손 검지를 올려놓는 곳을 표시하는 요철 부분 같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양손을 올려놓는 기준점이 어디인지 매우 궁금했다. 주위에 피아노의 기준점이 어디인지 물어보아도 이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볼 뿐, 속 시원한 답변을 주지 않아 궁금증은 커져갔다. 그런데 바이엘에서 양손 C(도)자리, G(솔)자리를 반복적으로 연습시키는 것을 보고, 피아노에 있어서 양손의 기준점은 아마도 C, G자리인 것 같다는 추측을 하며 연습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그 이후 진도를 나갈수록 손가락 위치가 자주 바뀌어 과연 기준점이라는 게 있는지 다시 의문에 휩싸이게 되었다.
아무래도 타인에게 직접 레슨을 받으며 배우는 것은 아니었기에 무엇보다 내가 연주하는 피아노의 박자나 빠르기가 정확한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다행히 전자피아노에 메트로놈 기능이 있어서 박자감이나 빠르기를 맞추는데 어느 정도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놀랍게도 나는 항상 메트로놈보다 빠르게 치고 있었다). 그래도 감이 잘 오지 않을 때에는 유튜브에 있는 해당 바이엘 순번 연주를 비교 삼아 들으며 연습을 이어나갔다.
바이엘은 진도를 나가면 나갈수록 피아노 연주에 필요한 패턴들을 반복적으로 연습을 시키는 것 같았다. 마치 미리 계획해놓은 집을 완성하기 위해 작은 벽돌들을 하나씩 하나씩 쌓아올려 나가는 방식 같아 마음에 들었다. 시간이 날때마다 나의 열 손가락에게 해당 패턴을 주지시켜 나갔다.
그리고 피아노를 배우기 전에는 어떻게 양손으로 피아노를 칠 수가 있는지 놀랍기만 했는데, 직접 피아노를 연습해보니 놀랍게도 양손은 저절로 움직이고 있었다. 오히려 머리로 생각하며 피아노를 치려고 하면 내 손가락들은 이내 방향을 잃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결국 피아노 연습이란 나의 열 손가락에 '머슬메모리(muscle memory)'를 구축하는 작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이엘을 연습하면서 한 챕터 한 챕터가 나에게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난생 첫 8분음표 진입(아직 16분음표가 남아 있다), 난생 첫 새로운 음역대로의 진입(아직도 나아가야할 음역대가 많이 남아 있다), 난생 첫 흑건반 연습(아직은 한낱 임시표 수준일 뿐이다) 등.
하지만 앞으로 가야할 길이 더 멀다. 아직도 흰건반 중심의 세계인 C major(다장조)를 벗어나지 못했고, 16분음표는 아직 그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꾸밈음이나 트릴 따위는 그저 딴 세상 이야기일 뿐이고, 페달은 말할 것도 없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일단 목표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 3악장이다(Piano Sonata No.14 in C-Sharp Minor, Op.27 No.2 "Moonlight" 3rd Movement). 사실 이 곡을 치기 위해 피아노를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플 클래식 앱을 통해 틈이 날 때마다 에밀 길렐스가 연주하는 월광 3악장을 들으며 나도 언젠가 빠르고(Presto) 격정적이게(Agitato) 월광 3악장을 연주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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