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첼(Welzel), 평소처럼 합격자와 불합격자 모두를 격려하다!
안녕하세요.
김동현 변호사입니다.
제54회 사법시험 최종합격자 발표가 오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사법시험을 합격한 것이 너무나도 먼 옛날의 일처럼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사법시험 뿐만 아니라 그외의 다른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이라면 모두 그 합격의 영광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꽃다운 청춘을 독서실 책상에서 보내야만하는 인고의 과정을 거쳐야하는데요. 이러한 고단한 과정을 거친 후 어떤 이는 합격을 하고, 또 어떤 이는 불합격의 고배를 마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 몇몇 수험생을 제외하고는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수험생은 없을 것입니다. 자신의 꽃다운 청춘을 바쳐 공부하는데, 이를 허투루 할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든 수험생들의 '목적'은 매 한 가지일 것입니다. 바로 '합격'이라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그 '결과'는 매정하게도 '합격'과 '불합격' 둘 중 하나로 귀결되게 됩니다.
그래서 매년 합격자 발표날이 되면, 어떤 이는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10년 공부한 것도 모두 의미없는 것이다"라고 한탄하는 반면에, 또 어떤 이는 "꿈을 향해 공부해온 우리 모두가 승리자다"라고 말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종류의 이야기는 비단 합격자 발표날에만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똑같은 종류의 논의가 바로 '형법학계'에서도 존재하였는데요.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죄의 본질에 관한 논의'입니다.
▪️사례
어느날 여러분은 생각없이 평소처럼 산책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친하다고 믿고 있었던 친구녀석이 갑자기 나무 뒤에서 뛰쳐나와 여러분을 향해 총을 쏘았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총알은 여러분의 귓가를 살짝 스쳐 빗나가버렸습니다.
이때 여러분은 그 친구의 죄를 어떻게 평가해야할까요? 총은 쏘았지만 결국 총알이 빗나가 여러분이 죽지 않았다는 점에 무게를 두어야할까요? 아니면 결과는 제쳐두고서라도, 믿었던 친구가 여러분을 총 쏘아 죽이려했다는 그 자체, 그 악의적인 태도에 무게를 두어야할까요?
이를 두고 형법학계 교수님들도 오랜 세월동안 갑론을박 하셨는데요. 그 견해의 차이를 크게 나누자면, 범죄행위에 따른 '결과'에 범죄의 본질이 있다고 보는 객관론, 그리고 이와 반대로 범죄의 본질이 '법적대적 의사'에 있다고 보는 주관론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사실 주관론을 추종하는 형법학자들은 어떻게 보면 매우 엄격한 사람들임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아마도 마음 속으로 여자를 범한 것도 실제 여자를 범한 것과 같다고 보는 매우 청교도적이고도 윤리적인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지금쯤이면 목사님, 스님 등 종교인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였을 것으로 생각되는 매우 인격이 훌륭한 분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주관론의 수장 격인 벨첼(Welzel)교수는 주관론이 가진 생각을 다음과 같은 단 한 문장으로 압축시켜버렸습니다.
"결과는 우연적일 수 있다"
물론 죄에 대한 평가에서 '그 법적대적 의사에 따른 결과가 발생했느냐(기수)' 아니면 '발생하지 않았느냐(미수)'는 빼놓을 수 없는 평가항목이며, 현대 형법에서 죄를 판단할 때 이러한 결과를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조차하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주관론이 극단으로 치닫게되면 나쁜 마음을 먹은 것만으로도 형사처벌을 당하게 되어 죄의 성립시기가 지나치게 앞당겨지며, 더욱이 겉으로 잘 알 수 없는 마음을 처벌대상으로 하니 결국 자의적인 처벌이 자행되어 국민의 인권이 무참히 짓밟히는 사태가 발생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주관론의 논지가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어놓는다는 것 자체는 부정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만약 위와 같은 생각을 가진 벨첼(Welzel)교수가 지금 제54회 사법시험 합격자 발표 통보받은 수험생들을 마주하고 있다면, 분명 "제54회 사법시험을 준비했던 수험생들은 그 결과가 합격이든 불합격이든 모두 승리자다"라고 격려해주었을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오늘만큼은 위와 같은 벨첼(Welzel)의 말을 다시 한 번 되뇌어 보고 싶습니다.
"결과는 우연적일 수 있다"